[이상훈] 나의 체스이야기 3편

아도니스 | 조회 수 3137 | 2012.04.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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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야기3편을 작성하여 봅니다. 이야기1편과2편이 저에 체스입문부터 현재까지의 체스로 살아온과정들을 여러가지로 작성하였다면 이야기3편에서는 한국체스의 시작배경에서도 저에 주 활동무대인 2003년이후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한국체스의역사?? 사실 우리나라의 체스역사는 많이 짧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정확히 언제부터가 체스역사의 시작이였는지는 사람마다  그에대한견해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런 암흑시절에도 미비하지만 몇몇분들이 활동을 해왔다고만 예기하고 있을뿐이다.

1990년대시절에 나의은인이자 절친한 지인인 송진우선생님 또한 1990년대후반에 하이텔,유니텔,천리안등 인터넷통신사로 체스활동을하던시절의 원년맴버라고 볼수있다.

그리고 그때당시의 원년맴버들중 상당수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체스활동을 하고있는 이른바 체스계의 절대주류들이라고 볼수있다.

 

이런 통신사시절의 교류들이 2000년대를 넘어가면서 엠게임이나 한게임,mso등으로 전이되면서 좀더 활발해진다. 2003년에 나역시 오프라인체스를 처음 경험하였다. 이때는 모든체스대회가 바둑용게시기를 사용하였으며

체스인들중 상당수는 잘못된 체스룰을 알고있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봉천체스클럽을 접하게된다. 오프라인으로 체스를 둘수있는기회가 전혀없었던 그때당시에 봉천체스클럽은 단비와도 같았다.

그따당시에는 하늘폰체스 사이트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봉천클럽의 체스사이트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봉천클럽의 운영자였던 김영진씨가 야체스라는 체스사이트를 독립적으로 만들면서 활성화 되었고

나를비롯한 김영진,최준일,청파님등이 정기적으로 활동하며 봉천클럽은 조금씩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그이후에 외국인들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다양한 체스동호인들이 이따금씩 방문하며 나아갔고

한게임체스가 활발해지는시점에 한게임의 체스강자들도 이따금씩 방문하여 체스대국을 두는시기였다. 매주 정기적으로 소규모토너먼트도 하였고, 저녁에는 식사,술등을 하며 많은이야기들을 나누었다.

 

2003~2004년은 봉천체스클럽이 활성화되며 여러동호인들이 체스를 즐기는 시절이였다. 물론 지금처럼 심각한 스탠다드체스는 아니였다.  적게는 5~15분에서 길게는 30분정도의 시간을놓고 대국하는정도였다.

시간도 아침 10시정도에서 저녁무렵까지 즐겼던것으로 기억된다. 많은 동호인들이 저마다의 직업을가지고 일요일마다 그렇게 즐기며 체스를 두었던 시절이였다. 2005년에도 게속해서 그렇게 나아갔고 봉천클럽은 많은발전을 이루었다.

야체스사이트도 아주 활성화되었고 사람들은 거의모든 체스에관한 이야기들을 야체스에서 토론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005년 10월정도에 영국에서 송진우님이 귀국하시면서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대후반부터 2000년초반까지 활동하다가 홀연히 영국으로 가신 송진우님은 여러가지를 가지고 한국에 귀국하게된다.

그때 처음으로 디지털체스시계라는것을 접했던것같다. 물론, 봉천클럽도 디지털시계를 2005년즈음하여 가지고 있었지만 국제체스경기용 엑셀시계는 모든사람들이 처음보는 시계였다.

그리고 송진우님이 귀국하면서 스탠다드체스를 체스동호인들은 하나둘씩 알게되고 세계체스연맹(이하FIDE)를 알게되면서 자연스럽게 레이팅이라는것을 알아나가게된다.

그때부터 모든 체스룰들이 정착화되고 그동안 잘못되어왔던 체스룰등도 알수있게 되었다.

 

스탠다드체스의 시작이라면 아마도 2006년초가 그 시작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하루에 1~2게임의 스탠다드체스의매력에 빠지게된다. 그전까지 5분체스에 빠져있었던것이 갑자기 스탠다드체스로 조금씩

변화하기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이야 어린선수들도 많이있고 성인선수들도 많이있지만 그때당시에는 어린선수라고해봐야 10명이 안되었던 시절이였다 그들을 우리는 체스1세대라고 말하곤 하였다.

지금현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몇년안된 대학생이거나 대학에 입학하는 나이정도이니 체스1세대의 어린선수라고해봐야 그역사는 너무나도 짧다고 볼수있다.

2006년 1~2월에 세계체스연맹에 공식 등록되면서 한국도 FIDE가입국이되었다고 볼수있었고 국제대회를 거쳐서 처음으로 2006년4월경에 선수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번에 확바뀌지는 못하여서 그렇게 레이팅선수들이 배출되었지만 여전히 한국땅에서 스탠다드체스는 활성화되지는 못하였다. 대회자체도 쉽게만들수 없었고 여전히 인터넷게임이 활성화되있었고 속기대국이 주류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갑자기는 아니였지만 협회,연맹등이 여러개 생기면서 조금씩 파벌싸움이 시작되는 암흑기로 접어들게된다.

 

이때당시에 코리아체스협회,한국체스연맹,대한체스연맹 등이 FIDE가입국의 연맹이 되고자 상당히 심각한싸움을 하고있었다. 오직 1개의 연맹만이 그권한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때당시에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코리아체스협회는 정치적인힘과 여러가지를 가지고있었던 다른연맹의 힘에 눌릴수박에 없었다. 급기야 협회 자체적 내부싸움이 극한으로 치닫으며 여러가지일들이 있었고

그런 모든진통은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못하다가 어쩔수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극적으로 대통합되며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좋은방향으로 통합되었다기보다 아주 힘들고 어렵게 통합되었다. 그시기가 2008년도4월경이였으며 2007년도 하반기부터 이때까지 게속해서 크고작은 파벌싸움이 있었고 2008년4월에서야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사)대한체스연맹은 출범하게된다. 파벌싸움의 진통속에 올림피아드 선발전은 치루어졌으며 우여곡절끝에 올림피아드도 간신히 가게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여자팀도 만들어졌었고 정말로 힘들게 가게되었다.

 

2008년4월이후 대한체스연맹이 출범되고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좋아라 했던것은 체스대국실이 광화문소재의 빌딩안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때당시 현인숙회장님은 현닷컴이라는 사무실을 독자적으로 가지고 계셨는데

그것을 확장하면서 체스대국실이 생긴것이다. 이 대국실이 생기면서 첫번째로 K-체스리그가 출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두번째로 코리아오픈이라는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던 선수들의 아지트가 생겼던 것이였다. 틈만나면 대국실에가서 체스도두고 공부도하고 놀기도하고 회의도하고 강의들도하며 그렇게 활용되었다.

그때부터가 스탠다드체스가 정착이되는 계기가되었고 오프라인에 하나둘씩 온라인강자들이 나타나면서 체스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었다.

만약 이런 공간이 없었더라면 K-체스리그나 스탠다드체스는 좀더 정착되는데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하루에 1~2게임을하며 기보용지에 기록도하며 시계도누르는 그런훈련들을 할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K-체스리그의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다. 2008년의 어느날 체스계에 종사하는 여러 체스선생님들과 선수들은 다른스포츠처럼 팀을이루어 경기하는 리그전에대한 토론을 하게된다.

그렇게 토론에서 나온결론은 1.심각한체스를하자 , 2.레이팅선수를양성하자, 3.여성선수들의 체스활성화를 만들자라는 취지로 출범하게 되었는데 송진우,이상훈,최준일,윤석배,송해,왕명옥 등 체스계에 종사하는 체스인들이

의기투합하며 6팀으로 출범하게된다. 일단 1차리그는 순조로웠다. 왜냐하면 연맹경기장이 의외로 큰편이여서 선수들이 시합하는데에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였고 일단 장소비용문제가 전혀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2차리그인 2009년 3월무렵부터는 연맹경기장이 없어지고 새로운장소가 협소하여 장소를 구할수박에 없었고 어렵게 인덕원소재의 명인랜드에서 운영하는 빈공간을 저렴한 장소비로 이용하게 된다.

이때당시에는 누군가가 체스리그를 관리할사람이 필요하였기에 송진우선생님은 체스리그총무를 맡고 대신 선수였던 강효석선생님이 그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좀더 수도권으로 장소를 옮기기 위하여 신금호부근의 수련관에서 3차리그를 맞이하게된다. 이때는 리그를 좀더 확대하고자 구단주를 모집하였고 마인드체스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총7팀이 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는 결국에 좋은장소를 찾다찾다가 지금까지 사용하는 종로구민회관을 이용하게 되었다. 2010년에 4차리그를 할때에는 짝수팀을 만들기위해 내가 한팀을 더만들며 총2팀을 운영하는 구단주가 되었다.

5차와6차에서는 기존에 한팀씩 운영하던 윤석배,강효석선생님 과 송해,오미연선생님이 공동으로 1개팀씩을 더만들며 총10개팀까지 늘어나게 된다.

 

불과 2년사이에 체스리그는 완전히 자리를 잡다못해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게되고 나아가서 한국체스의 발전과도 연결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하반기부터는 12개팀까지 늘어나며 1부,2부의 승강등제도까지 도입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의 참가도 늘어나며 1부리그는 질적인부분에서 많은성장을 이끌었으며 2부리그는 어린선수들이나 새롭게 스탠다드체스를

배우기위한 선수들의 시험장이기도 하였다. 많은 선수들이 8차리그까지 오는동안 레이팅을 취득하였으며 많은기록들을 남기고있다.

 

아마도 필자는 K-체스리그가 출범하면서 많은 스탠다드대국들이 생기고 질적으로 많은발전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체스선수를 지향하는 체스인들과 여러동호인들의 꿈의무대로 발전되고있다.

레이팅을 취득하기위한 대회로서는 따로 시합을 만들지않는이상 체스리그가 가장이상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코리아오픈,올림피아드,아시안게임등이 어우러지며 체스는 질적인부분에서 저변확대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다

 

한국체스의역사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고 필자는 생각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급변화 하는것을보면 한국이라는나라는 참으로 속전속결을 좋아하는것 같다. 그것도 최근 2~3년동안에 아주 큰발전을 했으니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어린선수들보다 지금의어린선수들이 좋은환경에서 더많이배우고 더성장하는것인지 모른다. 이제는 스폰서까지 생겨서 많은헤택들이 쏟아지는일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일들이 우리의앞에 놓여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한국체스의역사를 조금 살펴보았다. 3편을 마무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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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훈 2012.04.17. 02:15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  

자유게시판에 남겨두기엔 아까운 글들이니 조만간 체스칼럼 게시판을 만들어야 겠습니다. 

쿠도 2012.04.18. 14:31

잘봤어요~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한국 체스계가 엄청 피폐했었군요;; 

 

소년 2012.04.20. 12:44

상훈이형~ 저 병희에요 여기서 보니까 좋네요

잘 지내시죠?

아도니스 2012.04.20. 22:25

^^;; 그럭저럭 잘지내고있지 너도 잘지내나 모르겠네. 어떻게 나중에 시간되면 한번 연락줘~~~

서종민 2012.04.21. 18:26
그런데 결과보고의 경우 큰 대회일 땐 한 대국당 한 심판씩 보고있어 보고는 따로 안 해도 되나요?
심판이 여러보드를 한꺼번에 보
고 있는 경우만 보고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만일에 체크메이트이거나 기물부족 아니면 스테일메이트 같은 경우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심판이 알아서 해주고 심판이 보고 있지 않음 심판을 부르면 되는 거죠?
아도니스 2012.04.21. 20:33

한대국당 심판이 붙어있는경우는 아주큰 속기대국정도입니다. 아니면 올림피아드같이 큰 국가대항전 같은경우 두팀당 심판1명이 존재하는데 그런경우라도 심판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이상 말을해주면 안됩니다.

사람의 인력이라는게 언제나 돈도많이들어가고 그렇게 인력이 많지는 않기때문에 보통의 국제대회는 대회당 심판이 1~3명정도가 적정수준이기때문에 선수가 알아서 다해야 합니다. 그러고 심판또한 사람인지라

막 돌아다니면서 대국들을 관리감독하진 않거든여 책상에안아서 있는 정도입니다. 알아서 선수본인이 문제가 생겼을경우 심판을 찾아야되져. 체크메이트도 모를정도의선수는 대회에 참가 안한다고봐야하고

스테일메이트도 보통은 다 알아차리고 모를때 가볍게 상황을 손으로 가르키기만해도 압니다 제가 8년가까이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상대선수가 못알아차린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또한, 이미졌는데도 메이트 될때까지하는경우도 아주 희박하져. 그냥보통 기권합니다.

서종민 2012.04.21. 22:34
심판에게 결과보고할 때 심판을 불러 하나요? 아니면 심판에게 가나요?
그리고 체크메이트인데 상대가 혹시 모르면
아도니스 2012.04.23. 12:26

대회결과보고는 보통은 대국종료후에 기보용지에 싸인해야할때 심판을조용히 부르거나 아니면 심판이 알아서 찾아오는게 대부분입니다. 어느쪽이든 보통은 둘중하나입니다.

체크메이트를 상대가 혹시모르는경우는 국제대회는 없었습니다. 그것도 모를정도의선수가 국제대회에 참가하지를 않거든여. 이런대회는 우리나라 MSO,연맹대회의 전국애들속기대회가 아닙니다.

어느정도 준비가된 선수들이 참가하기때문에 제아무리 초보자라고해도 그건 외국에서초보자이지 적어도 기본적인건 다봅니다  모든 체스에서 일어날수있는상황을 체스선수는 모두 알고있어야하는게 기본과정입니다.

누군가가 기본적인 상식같은걸 모를수도있지않냐고 반문한다면... 대략난감할겁니다 적어도 외국에서 체스를하는 사람들은 그뜻을 이해할수없다는말이져. 그걸어떻게모를수있지? 이런반응이 돌아옵니다.

 

서종민 2012.04.23. 16:18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것 같아 하나만 더 질문합니다.
만일 국내 어린이 조그마한 대회 같은 경우 메이트를 모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나요?
제가 1달 쯤 후 대회 나가게 되서 궁금한 게 많아지네요
아도니스 2012.04.23. 18:49

우리나라가 체스가 보편화되어있는 국가는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나라 속기대회에서는 어린선수들이 체크메이트를 못볼수 있습니다. 그럴땐 제 경험상 손으로 가르치며 체크메이트라고 말하거나 조용히 손을들어 심판에게 말을하면 해결해 줍니다. 그외에도 어느정도 심판교육을 받았다면 웬만한것은 심판을 부르기위해 시계를 멈춘후 손을들면 심판이 알아서 해결해 줄겁니다. 센스있게 대처하면 체스대회에서 그닥 불이익받는경우는 없다고 봅니다.

항상 어느상황이든 당황하지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는게 중요하다는것을 말하고 싶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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