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나의 체스이야기 1편

아도니스 | 조회 수 3061 | 2012.04.14.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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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여, 이 사이트의 운영자와 오래전부터 알고지내오던 사이로 최근에 칼럼에대한 예기도 오고갔고 늦은 밤중에 한번 글을써볼까하고 남겨봅니다.

체스를 좋아하는 또는 좀더 깊이있게 파고 싶으신 분들에게 예기형식으로 말해볼까 합니다.

 

그전에 앞서서 먼저 저에소개부터 해야될것같네여.

이름은 이상훈 부산태생으로 1981년생 입니다. 2003~2005년도까지 온라인 닉네임:아도니스 로 활동 서울 봉천클럽에서 아마추어 동호인으로 활동했습니다.

2006년 제1회 한국체스최강전(FIDE레이팅겸 국제초청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하며2006년4월 FIDE레이팅 2000점을 취득하며 체스선수로 입문

 

그해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펄스트세러데이 토너먼트참가하고 이태리 토리노 세계체스 올림피아드에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CM마스터타이틀을취득 했고,

2007년 제1회 대만 아시아드래곤 국제토너먼트에서 오픈부 3위입상,2008년 호주오픈 메이저그룹에서 공동7위입상,2008년 독일 드레스덴 올림피아드 국가대표출전,

2010년 아시안게임 1차선발전겸 체스최강부1위로 국가대표선발, 2010년 러시아 한티만시스크 올림피아드 국가대표출전,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및단체전 국가대표선수.

2011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시팀 선수권대회 서울대표팀으로출전,2012년 러시아 모스크바오픈 출전,2012년 제1회 아시안 네이션스컵 국가대표선수,

2012년 터키 이스탄불 올림피아드 국가대표출전.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저의 선수생활중 큰것들만 적어봤습니다.

 

현) 대한체스연맹 선수,사범,국가대표수석코치,로 있으며 K-체스리그 레전드,레볼루션 2개구단 구단주.입니다.

현재는 선수생활로 년평균 2~5개정도의 국제대회를 다녀오고있으며, 어린선수들을 개인지도하고 연맹의 대회스케줄관리하에 대회를 다녀오고있는 현역선수이자 체스사범입니다.

 

저를 아시는분들도 많으니 아는내용이지만 일단 자기소개를 하는의미로 체스선수로 입문하여 지금까지의 경력들을 말해봤습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파란만장했던 저에 체스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다소 길더라도 끈기를가지고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때는 거슬러 올라가서 저에 중학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방학때면 부산의 이모집으로 내려가는것이 일상이되어버린 초등학교시절, 중학생이 되고나서 나는 우연히 막내이모집으로 놀러가게된다.

막내이모부는 목사님으로 항상 반듯하고 곧은 성품을 지니고 계셨다. 그흔한 게임기하나없는 막내이모집에서 무료하게 보내고있던때에 막내이모부는 이상하게생긴 보드게임을 가져오셨다.

이것이 내가 체스와처음접한 시절이였다. 사실 이모부에게 배우긴했지만 지금생각해보니 가르쳐주었던 룰이 틀린것도 많았던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컴퓨터도 제대로 있지않아서 그냥 가지고 노는 수준이였다. 그리고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면서 컴퓨터가 생겼고 온라인에서 체스게임을 즐기는 소년이 되었다.

그때당시에 피씨방이라는것이 생겼는데 다른친구들은 전부 스타크레프트를 하거나 다른 게임들을 하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않고 체스게임을해서 게임할때 왕따를 당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 1년동안 허성세월을 보내다가 군복무를 하게되었고 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하며 출퇴근을 하던시절 나는 어렵지않게 체스를 즐길수 있었다.

이때당시가 2002년 월드컵바람이 불면서 나의생활도 힘들었고 그때의 유일한 버팀목은 체스였다. 나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인터내셔널마스터를 알게되었고 인터내셔널 마스터에게 2달동안 배우게되었고 그집에서 자주 청소와빨래등을하며 체스를 배웠다 그러나, 그런배움이 나에게 크게 와닿지않았고 그냥 잘하고싶은 마음뿐이였다.

 

그런 체스스승이 한국땅을 떠나고나서 우연히 봉천 체스클럽을 알게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오프라인으로 체스모임을 가지게되었다.

이때당시가 2003년으로 한게임에서 체스를하며 많은 체스인들을 알게되었고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동생들이 많다. 그리고 2004년 소집해제와 동시에 부모님의 인테리어사업에 동참하게된다.

이때에 월~토까지 근무를하며 아버지의사업을 돕고있었고 항상 밤에 체스대국을두고 주말에 봉천클럽모임을 지키며 체스를 하게된다.

그렇게 많은 체스인,외국인 들과 친분관계를형성하며 2005년까지 이어졌고 한참 사업승계수업을 받고있을때 갑자기 영국에서 송진우님이 귀국하게된다.

이때의 첫대면은 서로가 어색하게 체스만두었고 말은 거의하지않고 식사하고 헤어진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이후에 많은 예기들을통해서 나의 단점적인부분과 여러가지예기를 들으며

친분을 다지게된다...

 

그이후에 어느날 저녁식사자리에서 나에게 이런말을 하였다. 당신은 앞으로 체스계에 꼭필요한 사람이다. 나를믿고 나와함께 체스선수를 시작하지 않겠는가...

내가 앞으로 많은도움을 주겠다. 그러면서 FIDE레이팅에관한 여러가지를 설명하였고 이 레이팅취득과함께 한국땅에 FIDE레이팅을 뿌리내리려고 하는 것이였다.

이당시에 실력이 괜찬은 체스인들은 그렇게 많지안았고 선뜻 이런 국제토너먼트를 하려는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꼭 필요하다고 하였다.

나는 이때당시에 아버지사업을 물려받기위해 착실히 인계수업중이였고 괜찬은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하는것이라 많은고민과 갈등을 할수박에 없었다.

그리고 친동생이 어느덧 제대함과동시에 결단을 내리며 과감하게 체스선수를 시작하기위해 아버지와 담판을 지어야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천신만고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한국체스최강전(FIDE레이팅 초청토너먼트)예선전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때당시가 2005년 12월이였다...

 

모든것을 그만두고 체스세계에 빠진나는 예선전에 선발되기위해 처음으로 체스공부를 하게되었다. 이때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었기때문에 여러가지의 체스책들과기보들로 공부를 하게된다.

나는 온,오프라인으로 많은대국을하며 단련되있었고 어렵지않게 본선에 진출하였고 그후로 본선까지 줄기차게 공부도하고 대국도두며 체스에 집중하게된다.

이때당시 송진우님은 영국에서 3명의마스터를 초청하며 힘을썼고 한국인 6명과 외국인3명+송진우님까지 10명이서 9라운드 라운드로빈을 하게되었다.

이때나는 모든 초청외국인선수와 무승부를 만들어내고 9라운드 6승점으로 2006년4월 FIDE레이팅 2000점으로 한국인최초의 레이팅취득자가 되었다.

이때 레이팅을취득한 선수는 이상훈,이기열,김용태,최준일,오정엽,김현우 로 한국역사상 최초의 레이팅선수들이 탄생하는 순간이였다.

이때나는 한국인선수중 최다승점으로 우승하였고 전체로는 3위에 입상하였다. 이때의 우승상패는 지금도 나의 보물1호다. 20만원이넘는 이상패는 내가 여러가지를 포기하며 얻은것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남다른 상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쁨도 만끽하기전에 세계체스올림피아드 라는 대회를 알게된다. 이대회는 체스선수라면 꿈의무대로 축구로치자면 월드컵과 마찬가지인 체스최대의 이벤트대회이고,

이대회는 대회성적에따라서 마스터타이틀도 취득할수있는 그런 꿈의무대였다.

나는 그때당시 한국FIDE레이팅 랭킹1위로 협회의 지명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나를 포함한 6명의선수가 선발전을통해 선발되었다.

이쯤되면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할수박에 없었다. 나는 이것이 내인생의 마지막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나는 일산에서 아는지인의집에 칩거를하며 3개월가량을 체스공부에 매진하였고 5월초에 헝가리에있는 부다페스트로 출국하게된다. 이것이 나의 첫번째 국제대회 출전이였다.

 

나는 이대회와 토리노 올림피아드에 참가하기위해 그동안 적금으로 가지고있었던 700만원을 모두 쏟아부었다. 생활비로도 썼고 2개의 국제대회를 한달간 다녀오며 모두썼다.

그러나 전혀 아깝지않았고 오히려 뿌듯하였다. 헝가리에서 국제대회를 치르며 감각을 조율하였고, 토리노 올림피아드에서 2번보드로 출전하며 12라운드 6.5승점으로

당당히 CM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금은 별거아닌 타이틀이지만 그때당시에는 굉장한 이슈였고, 같이간 송진우님또한 FM타이틀을 취득하였다.

이때당시에는 올림피아드가 13라운드까지있었고 6명의선수가 참가하였으며 4인1팀으로 대결하는 국가간 팀대항전 이였다.

그렇게 2006년 6월초에 한국으로 귀국하였고 많은이슈를 남기며 2006년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07년 나는 레이팅도 괜찬게 취득하였고, 레이팅도 취득이후에 더욱올리며 타이틀도 취득했기에 사람들이 알아서 레슨제의가 들어올것이라고 아주 순진한 착각을 하였다.

이때부터 급격한 생활고에 시달리게된다. 2006년까지는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갔지만 따로 일은하지않고 체스만두며 생활하던 나로서는 수입자체가 없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 방과후수업,특별활동,개인레슨등도 거의 없었던시절이였고, 강사들과도 그닥 유대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체스수업도 없었다.

친동생에게 가끔씩 용돈을 타서 써야할정도로 힘들어서 어쩔수없이 그때당시에 활성화되어있던 yachess의 봉천클럽사이트에 레슨광고를 내었고

이후에 천신만고끝에 김용태라는 아이와 몇몇 강사분들의 도움으로 그룹레슨을하게되며 입에 풀칠은 할수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하나의 국제대회에 참가제의를 받게되었다. 한국을 예의주시하던 세계체스연맹의 부회장이였던 이그나시오스룡이 대만과의 접촉을통해서 국제대회를 창설한것이였다.

이른바 아시아 드래곤 국제대회로 각 나라당 오픈부2명,U16부2명으로 5개국이 참가하고 대만은 주최국으로 특별히 4명씩을 참가시켜서 12명이 11라운드로빈으로 치루었다.

 

나는 2006년여름부터~ 2007년 여름까지 거의 하루7시간이상의 공부를 했었고 새로운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추어 특히 오프닝레파토리구축,체스전략공부,체스대국등을 통하여

많은준비를 해왔었고, 그것들이 완성되면서 대회를 치르게 된것이였다. 나는 11라운드 8.5점의 승점으로 대회3위에 입상을 하게된다.

그때당시에 싱가폴선수들은 상당히 싱가폴에서 주력으로 키우는 선수들로 지금은 2300대가넘는 레이팅과실력을 가지는 선수가 되었다.

그때당시에 나는 백번국 Nf3를 준비하였고 다양한 라인들을 대비하며 많은승을 거두었고, 흑번국에서는 시실리안 나이도프,님조인디언,퀸즈인디언등을 사용하며 7승3무1패의성적을 기록하였다.

그 1패도 시간트러블로 2수메이트를 놓치며 역전패 당하였다. 2위,1위와 승점차가 0.5점,1점의 차이로 나로서는 눈물을 흘릴수박에 없었다.

그렇게 2007년도를 마무리짓게 되었다.

 

2008년 간신히 입에 풀칠을하고 있을때에 나는 봉천클럽때부터 친분을 다져온 최준일님, 나에게 선수로 입문할수있게끔 여러가지로 도움을준 송진우님,과의 친분관계를 이어가며 한가지 프로젝트를 듣게되었다. 바로 호주오픈을 어린학생들을데리고 참가하는것이였다.

그러나나는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고있었기때문에 대회에 갈수있는 형편은 안되었고, 부모님에게는 손을벌리기 실어서 낙담하였으나, 최준일님과 송진우님은 나를위해 본인들의 인솔비,코치비용등을 거의 포기하며 나의경비를 마련해주었고 나는 10여명이넘는 선수단과함께 선수로 참가하게되었다. 그때당시에 가르치던 용태라는제자도 같이 참가하게되었다.

그때당시에 분당쪽에서 가르치던 송진우님의 아이들과 마인드체스에서 가르치던 최준일님의 아이들과함께 나는 대회에 참가하였고,

나는 나의제자 용태와 최준일님과함께 호주오픈 메이저그룹에 3명이서 출전하게되었다.

이때당시에나는 또다시 줄기차게 공부를하며 준비했었던 라인들을 다듬으며 4라운드까지 4전전승으로 호주체스계를 초토화했고 그이후에도 1~3번보드에서 내려오지않으며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초중반의 상승세와다르게 대회후반부터 많은패배를 기록하며 체력저하로 무너졌고 결국 공동7위로 대회를 마감하게되었다.

그러나 같이참가한 용태가 초반에 삐걱거리다가 내리 7연승을 내달리며 결국에는 공동우승까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바람에나는 단번에 급부상하며 레슨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입소문이 조금씩 타기시작했고 실력만좋은 체스인에서 실력과레슨능력을 겸비한 선수겸사범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무렵 2007년부터 협회의 파벌싸움은 조금씩 시작되었고 호주오픈을 다녀온 2008년1월에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이때에나는 파벌싸움을통해 여러번의 마음의상처를 입게되었고

급기야 체스를 그만둘 지경에 이르게된다. 하지만, 지인인 송진우,최준일님은 그런나를 다독거리며 붙잡고있었고, 천신만고끝에 대통합되며 (사)대한체스연맹이 새롭게 출범되었다.

대회를다녀온 2008월1월부터5월무렵까지 나는 일상생활에 거의 아무것도하지못하며 파벌싸움에 중심에 있었고, 그기간동안에 거의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힘든나날을 보내었다.

그무렵에는 모든것을 잊고자 게속해서 체스공부를하며 위안을 삼았고 하루 10시간씩 공부하며 모든것을 잊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2006년~2008년까지의 대회들을통해서 나의문제점을 진단하였고 공부방법과 공부과정의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책들을통해서 전략의중요성을 알게되었고 그런나머지 너무나 체스전략에 치중하게되었다. 그러면서 가장기본인 체스전술을 거의 공부하지않았고, 결국 약점을 만드러내는데에만

집중하면서 정작 약점을 응징하는 전술적능력들의문제가 심각하다는것을 깨닫게되었다.

그리고 또하나 엔딩력에 심각한 문제가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대국들에서 전술적날카로움 과 기본적인 엔딩능력만 공부했어도 훨씬더 많은승수를 쌓을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때부터 제2의도약을 위하여 다시 체계적인공부에 돌입하게된다. 그간에 게속해왔던 전략공부를 중단하고 체계적인 전술훈련부터,엔딩공부,오프닝레파토리의변화에 초첨을 맞추었다.

그리고 2008년6월부터 2년계약의 개인레슨3개와 여러개의 수업들을통해 자리를 잡게되었고, 본격적으로 체스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파벌싸움이 한참이던 2008년2월에 올림피아드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고 국가대표된 나는 11월에 독일 드레스덴 올림피아드로 출국하게된다.

이때나는 2번보드에서 11라운드 5.5점으로 정확히 반타작하며 선전하였고 2100대의 레이팅으로 진입하게된다. 크게 많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전술적능력의향상과조금발전한 엔딩력으로

상향평준화된 올림피아드의벽을 다소 깰수있었다. 그리고 일선에서 체스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함께 K-체스리그를 출범하며 조금씩 체스계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6팀으로 하였으나 똘똘뭉치며 발전하기를 소망하였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2008년도를 마치게 되었다...

 

2009년 이제 본격적으로 후진양성에 힘쓰게된 나는 3명의선수를 주축으로 체계적인 트레이닝에 힘쓰게되었고, 나역시도 제3의 도약을위해서 공부를 꾸준히하게 되었다.

특히 엔딩부분에 치밀한공부를 하게되었고 엔딩의특수한포지션 이론들을통해 발전해 나갔다. 그러면서 전술공부도 난이도를 높이며 공부하였고, 1~2년뒤를 기약하며 선수들을 만들어나갔다.

이때는 국제대회도 거의마다한채 제자들가르치는것과 K-체스리그운영,체스공부 만을 하면서 차곡차곡 돈도모으고 사람들도만나며 그렇게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선수들을 만들고 있었고 2010년에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닥 간판으로 내세울만한 선수발굴도 없었고, 이때까지 체스강의에 사람들에게 검증을 받고있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서두르지않고 체계적으로 거의초보나 다름없었던 어린선수들을 하나하나씩 만들고있었다. 그렇게 2009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2010년 어느덧 올림피아드 선발전이 있는해로 그 어느때보다 치열한 선발전을 예고하고있었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주최국인 중국의 영향력으로 체스가 정식종목이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의 정치적인문제를 어렵게 넘기며 한국도 체스국가대표 선수단을 선발하여 갈수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올림피아드 1차선발전에서 치열함속에 플레이오프까지가는 치열함속에 간신히 2위로 선발되었고, 몽골출신의선수 멍크밧도 간신히 1위로 선발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2008년도에 국제대회인 코리아오픈을 큰 스폰서를통하여 개최하였고 성황리에 마쳤다. 이과정에서 어렵게 친분관계를 형성한 멍크밧선수를 대한체스연맹소속으로 만들며

올림피아드에 출전하게 되었다. 나는 유일하게 선수로는 3회연속으로 올림피아드에 출전하게되었고, 가르치고있던 여자선수인 임하경,김태경을 선발전에 합격시키는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아시아 어린이선수권 선발전에서 많은 제자들을 합격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5월말, 드디어 아시안게임 1차선발전을 치르게되었다. 나는 1년넘게 국제대회를 중단하며 많은준비를 하고있는 상태였고, 오프닝뿐만아니라,전술,전략,엔딩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있었다. 그결과 6라운드에서 5.5점의 승점으로 당당히 1위에 뽑히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같이참가한 제자들은 줄줄이 탈락하며 선발전의 어려움을 느낄수박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6월달에 2차선발전이 있었고 나는 치밀하게 제자들을 준비시키며 대비하였다. 이른바 쪽집게과외를하며 제자들을 준비시켰다.

하나하나 개개인의 참가선수에대한 스타일과 기보들의분석을 통하여 대비하였고 그결과 여자부에 임하경,김태경 을 남자부에 정민우,장재원을 합격시키며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이때에 마음고생은 심하였으나 덕분에 제자들이 매스컴을타면서 나또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되었다.

 

그결과 개인레슨제의가 못불터지듯이 터지며 살인적인 스케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는 그결과 나의공부를 등한시하게되었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나게되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1번보드의 중책을 맏게되었고 올림피아드는 더욱더 선수들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내성적은 바닥을치게 되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몇몇 좋은대국들도 나왔으나 전반적으로 성적은 바닥을쳤고, 나는 인지도,체스강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채 체스선수로서의 성적은 바닥을 치게되었다...

나는 또다시 많은것들을 느끼며 또다시 도약을하기위해 고민과생각을 하기시작한다...그렇게 2010년도를 성황리에 마무리하게된다.

아마도 내 인생에있어서 2010년도는 최고의 장미빛한해였던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아픔도많은 한해이기도했다...얻는것이있으면 잃는것이 있듯이...

 

2010년도를 끝으로 나는 많은생각을 하게되었다. 2011년도가 되고나서 많은제자들이 체스를 그만두거나 이동하게되었고 또다시 새로운제자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선수를 지향하는 아이들을 위주로 가르치느라 초보제자들의 관리를 다소소홀히 하게되었고, 엄격한 스파르타방식과 엄한 교육방식으로 많은 아이들이 버티지못하고 그만두었다.

그점은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부분으로 이 이후에나는 이런것들을 고치며 좀더 유연하고 나은 교육방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나마 끝까지 살아남아서 게속해서 가르침을받는 제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였다. 다사다난했던 20대의 마지막을 끝으로 새롭게 30대의시작을 나는 맞이하고 있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이야기1탄을 마무리짓는다.

 

나는 여러번의좌절속에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과도한 몰입속에 절실하게 체스공부를하였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끝에 여러가지의 체스과정들을 습득하였고,

여러번의 변화들을 감수하며 게속해서 도약을 이루어 내었다. 나는 말하고싶다. 무엇보다 말이아닌 실천으로 모든것을 하나하나씩 꾸준히 이루어 내었다고...

당신은과연 진정으로 체스공부를 절실하게 해보았는가?? 그답은 바로 당신자신만이 알것이다. 이야기1편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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