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장님

민수 | 조회 수 2147 | 2012.09.28. 00:11


The Unseeing Mind


 by IM IMBryanSmith                                          
 translated by 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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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를 둘 때 뻔한 수를 놓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혹은 심리적인 요인과 같은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왜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생길까요?


 제가 보기엔 두 가지 이유로 인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보지 못할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체스에 더 강해질수록 즉, 우리가 일반적인 아이디어들을 많이 알수록 이 정신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죠. 이번 기사의 아이디어를 준 게임입니다.


Pace Pietro, D vs. Smith, B
Citta di Erba
2011
Black to move


 백은 방금 51.Rh8을 두었습니다. 저의 h3폰을 공격하고 있네요. h3폰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가 둘 수있는 수들은 확실히 좀 제약이 있겠습니다. 51...Rg3 51...h2 등등?


 아차! 혹시 51.Rh2를 보셨나요? 아마도 h폰을 지키기 위해 둘 수 있는 세 가지의 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 저는 이 수를 고려하지 않았는데요. 저는 아마 다른 선수가 이 수를 놓쳤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 수가 ‘당신의 룩을 지나친 폰 앞에 놓지 말라.’ 라는 룩과 폰 엔드게임의 대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흑은 이 수를 통해 평범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Rh1과 ...h2로 이어지는 Rh2를 둠으로써 흑은 백 킹의 접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흑이 51...Rh2를 두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백은 52.Kb3를 둠으로써 킹으로 접근하려 할 것입니다. 흑은 52...Rh1 53.Kc3 h2. 이제 54.Kd2 등으로 킹이 더 다가온다면, 54...Ra1 55.Rxh2 Ra2+과 같은 일반적인 트릭에 빠지게 됩니다. (이 변화수들이 머리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밑의 다이어그램을 참조하세요)


 또한 백의 룩은 h파일에 묶이게 됩니다.(룩이 h파일을 떠난다면 흑은 룩을 움직일 기회가 생기고 폰은 퀸으로 승진할 것입니다) 한편 자신의 룩을 비활성화시키는 흑의 전략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데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룩이 백킹의 접근을 방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만약 제가 51...Rh2를 후보수로서 검토하기만 했더라면, 이 수가 간단한 승리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의 기물들이 비활성화 되어있다는 점을 안다면, 유일하게 남은 것은 백이 자신의 포지션을 지킬 수 있는 요새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검토입니다. 하지만 g5와 f4를 통해 흑의 킹이 쉽게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흑은 f3폰을 따낼 것이고 백은 또한 e4를 방어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진행이 되겠습니다.





 


간단한 승리로 이어지는 51.Rh2 대신에 저는 첫째로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51...Rg3(f3폰을 공격하는)를 검토했습니다.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라면 룩과 폰 엔드게임에서 끝에서 두 번째 라인에 룩을 위치시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또한 h2라는 스퀘어는 킹의 피신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51...Rg3 이후에, 백은 52.Kb3를 두었고 그의 킹을 격전지로 데려오려 합니다. 흑은 물론 f3폰을 따낼 수 있습니다만, 그동안 백킹은 d5로 가게 됩니다. 전 백이 지나친 e폰으로 룩을 상대로 비김을 만들 수 있는 변화수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51...h2를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산과정에서 착오가 있었고 - 어차피 그 수도 이기진 못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게임은 비김이 되었습니다.


 제가 했어야 했던 일은 후보수를 나열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 작업을 수행했더라면 51...Rh2를 찾아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51...Rh2로 쉽게 이긴다는 것도 알아냈겠지요. 제가 51...Rh2를 놓친 이유는 “룩을 지나친 폰 앞에 위치시키지 말라” 라는 엔드게임 원칙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일종의 좌절감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이미 몇 수 전에 쉽게 이길 수 있는 포지션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게임이 쉽게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51...Rh2와 같은 ‘원칙을 어기는 수’ 가 필요하게 될 것이란 상상을 못했기 때문이죠.

 

 제가 ‘원칙에 어긋나는 수’ - 51...Rh2와 같이 적 킹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 폰을 마지막 단계까지 밀고 룩을 그 앞에 위치시키는 수 - 를 항상 놓쳤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번 게임의 경우에서 제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이와같은 아이디어는 이번의 패배를 통해 제 자신에게 강하게 보강되어 앞으로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놓치지 않게 되겠죠. 비록 그 해결책이 원칙을 무시하는 괴상한 발상이더라도 말입니다. 일반적인 체스의 원칙을 무시하는 아이디어 혹은 원칙과는 다른 법칙, 그리고 그에 관한 견문을 넓히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의 실수를 없앨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수를 놓치게 되는 두 가지의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혹은 일반적인 ‘원칙에 어긋나는 수’들 말이죠. 또한 플레이어들은 간혹 *‘물리는 수’ 들을 간과하기도 하는데요. 이와 관련된 예로는 Christiansen와 Karpov의 유명한 게임이 있습니다.





 

*역자 주 : 백의 퀸은 스타팅 포지션에서 c2스퀘어로 진출해 있는 상황이죠. 이 상황에서 포크를 걸기 위해 퀸을 다시 스타팅 포지션인 d1으로 후퇴했습니다. 그래서 ‘retreating moves’ 라는 표현이 쓰인 것 같은데요. ‘물리는 수’로 변역하긴 했지만, 뭔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과연 이 수를 후퇴 혹은 물리는 수로 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 부분은 저자의 약간의 과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단순히 카르포프의 불런더에 대한 대응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11...Bd6로 나온 포지션에서12.Qd1의 응수는 정말 간단한 전술문제이죠? 퀸을 물리고 자시고를 떠나서 백은 당연히! 12.Qd1을 둬야합니다. 1500레이팅 정도의 플레이어라도 찾을 수 있는 전술문제죠.  카르포프도 사람인지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거나 혹은 방심할 수도 있는 거겠죠. ‘retreating moves’라는 개념이 이런 경우에 쓰이는 건가요? 저도 궁금하네요. 분명히 퀸을 다시 원위치로 '물리는 수' 이기도 합니다만...^^





 아마도 선수들이 경험하는 “사각지대”의 일반적인 또 다른 형태는 격전이 가능한 상황에서의 ‘얌전한 수’ 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의 예전 게임이 하나 기억나네요.





16번째 수에서의 흑의 포지션은 별로 좋지 않아 보입니다. 킹은 중앙에 있고 d6의 지나친(게다가 폰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폰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백의 e5-e6의 빠른 돌파가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 돌파가 제대로 먹히게끔 하기위해 한 동안 변화수를 계산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아마도 16.e6, 16.Nd4나 16.Rae1 등의 변화수들을 계산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변화수들을 계산하느라 발목이 잡힌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확신할만한 수는 찾지 못하고 있었죠. 저는 돌파를 당장은 감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대신에 저는 예방조처 수인 16.Qd4!로 흑이 생각하고 있는 Nf4-e6의 위험을 간단히 방지할 수 있었죠. b5-b4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수는 정말 결정적인 수 였습니다. 또한 e5-e6 돌파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a2-a4를 통해 퀸사이드에서의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알아차렸구요. 이 수를 통해 b5폰을 따내거나 저의 나잇을 치명적인 스퀘어인 a4로 이동시킨 후 b6나 c5로 자리잡게끔 할 수 있었죠.


 정리하자면, 우리가 단순한 간과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좁은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이번 게임에서 저는 이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죠. 하지만 첫 번째 게임에선 그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후보수를 나열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Alexander Kotov의 저서인 ‘Think Like a Grandmaster’ 와 ‘Play Like a Grandmaster’ 에 나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그가 비판받아온 것도 사실입니다만... 또한 그가 제시한대로 플레이어들이 로봇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수를 나열하는 방법은 제가 보기엔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상대방이 수를 두자마자 하나 혹은 둘의 라인으로 계산을 시작하곤 하죠.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좁은 시야로 이어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시작한 계산으로 뭔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시작포지션으로 돌이가 시야를 넓혀보도록 하세요. 이 글의 첫 번째 포지션에서 제가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저는 51...Rh2를 찾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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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팔 2012.09.29. 15:2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가끔 플레이한 게임들을 컴퓨터로 분석할 때 컴퓨터가 제시하는 신박한 수 들에 놀랐었는데,

한번 후보수 나열을 연습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오타가 몇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섯번째 문단 두번째 줄(맨 위에서 열한번째 줄) 52.Kb2 오타같습니다. 52.Kb3가 맞을 것 같습니다. 다이어그램 상에서도 그렇고요. 

그리고 밑에서 세번째 문단 두번째 줄에 Nf4-e6는 f4스퀘어에 나잇이 없어 도저히 무슨 수인지 모르겠습니다.

흑이 갖고있는 나잇은 g6나잇 뿐이고요. 굳이 생각해보자면 Ng6xe5정도인 것 같습니다만, f4스퀘어 나잇이 누락된 것도 같고요.

 

마지막으로 주석 다신 부분에 '물리는'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후퇴하는'으로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오프닝 원칙 중 하나에 '기물들을 전개시켜라'인데

이전 문단부터 계속해서 '필요하다면 원칙에 반하는 수를 둘 줄 알아야한다.'를 강조하고 있는 글이니만큼

'전개된 기물을 후퇴시키는 수도 경우에 따라서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느낌으로 쓰여진 글 같습니다.

민수 2012.09.29. 16:44

1. 지적하신 52.Kb3가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이핑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네요. 수정했습니다. 

 

2. Nf4-e6란 현재 포지션에서 g6에 위치한 나잇을 f4-e6로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나잇이 e6로 이동하게 되면 e5폰의 블락이 가능해지죠. 제안하신 Ng6xe5는 흑이 자신의 나잇을 잃게 되기 때문에 악수라고 생각합니다.

 

3. f4에 나잇이 누락된 것은 아닙니다. 원문 기사를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만약 이 포지션에서 f4에 나잇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흑이 유리한 상황이겠네요.

민수 2012.09.29. 17:01

retreating move에 관한 지적과 관련해서는,

 '물리는 수'와  '후퇴하는 수' 는 큰 의미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석글에 후퇴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했구요.

 

 제가 재미있게 생각한 점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retreating move라는 개념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retreating move라는 개념이 쓰이는 경우는 보통 공격을 펼치던 상황에서 예상과 다르게 피스를 뒤로 물리는 경우였거든요. 그  '물리는 수'로 인해 더 나은 포지션을 얻게 되는 것이 보통이죠. 위의 경우에도 12.Qd1으로 상대의 마이너피스를 하나 따내게 되기 때문에 더 나은 포지션을 얻게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만, 주석에서 언급한대로 해당 표지션의 내용은 너무 간단한 포크라서요.  체스의 일반원칙이나 retreating move 등을 운운하는 것이 너무 거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던져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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