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공격 (or, 철벽수비)

민수 | 조회 수 4527 | 2011.11.24. 23:10

The Failed Attack (Or, The Heroic Defense)

Submitted by IM IMBryanSmith on Wed, 09/14/2011 at 9:53pm.
translated by lue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체스게임의 종류는 정말 다양합니다. 여러분이 체스를 두기 위해 의자에 앉는 그 순간에는 아직 어떤 종류의 게임이 펼쳐질지 알 수 없습니다. 한쪽이 아주 약간 유리한 긴 엔드게임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선수의 경우에는 순식간에 패배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죠. 아름다운 공격이 펼쳐질 수도 있으며, 마찬가지로 실패한 공격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한쪽 선수가 ‘올인’ 을 한다면 그 올인을 받쳐주는 어떤 이유가 있건 간에, 수비 측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논의할 대상입니다.

 

지난 6월에 이태리의 Forni di Sopra Open에서 멕시코의 챔피언인 GM Manuel Leon Hoyos를 상대로 두었던 광란의 게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게임을 할 때에 저는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두는 중이었습니다. 6게임에서 4.5점을 획득했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제가 만약 이 게임을 이긴다면 그다음 두 게임에서 그저 한 번만 비기면 저의 마지막 GM 기준을 맞추고 GM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압박감이 배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제가 했던 공격은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압박 속에서 정수로 연결되는 좁은 길을 찾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죠. 제가 만약 이기는 길을 발견했더라면(혹은, 제가 봤던 이기는 라인을 믿었었더라면) 정말 멋진 게임이 됐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인식이, 그리고 이 판을 이기면 거의 GM에 가까워진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압박감을 배로 더했고 저를 지나친 완벽주의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도를 넘은 완벽주의가 시간압박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죠.

 

 수비 측의 테크닉 또한 정말 큰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상대는 저와 마찬가지로 시간압박에 시달리는 상태였음에도, 그야말로 철인과 같은 대담함을 보여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방어적인 사고태세”가 성공을 위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오프닝을 통해서 언제나 환상적인 포지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Leon Hoyos는 흑을 두었고, 저의 13번째 수는 참신하게까지 보이는 강한 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상대의 부정확한 공격에 (정확한 공격이더라도) 응징을 가하는 것은 성공한 체스선수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Leon Hoyos의 플레이에서 가장 눈에 띠었던 점은 도발에 대해 후퇴로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저보다 약한 선수를 상대로 마찬가지의 플레이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상대는 17~19번째 수 사이에서 좀 중요성이 떨어지는 수를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격은 부드럽게 진행되었을 것이고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줄었겠지요. 또한, 시간압박에 시달리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Leon Hoyos는 제가 선택할 길을 가장 좁게, 상황을 최대한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오프닝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발견해낸 13.h4 라는 수는 그야말로 참신한 수였습니다. 보통은 상대에게 단단한 표지션적 압박을 가하려 할 때에 Maroczy bind를 생각하겠죠? 여기서 저는 그 포지션을 광기 넘치는 공격적인 게임으로 변화시켜버렸습니다. 흑은 퀸싸이드를 점령하고 있지만, 흑의 피스들은 흑의 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몇 수 전에 마음먹었던 ‘올인’을 하기로 합니다.

  

  

이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잠시 멈춰보도록 하죠. 각 측은 약 1분이 남아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매 수당 +30초의 시간이 증가되긴 했지만, 30초라는 시간은 이렇게 복잡한 포지션을 플레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닙니다. 결과는 누가 더 대담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이미 승리가 날아가 버린 게 아닌가 하는 끊이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23.Qh4 때문에? 혹은 25.Bg7? 지난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에는 제대로 플레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생각을 떨쳐 내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27.Bg7으로 강제 비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끔찍한 블런더를 하고야 말았죠.

  

  

이 일화를 통해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이 게임 후에 저는 정말 깊은 반성을 했습니다.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라인을 놓쳤다는 것 때문이 아니고, 27번째 수에서 강제 비김 수를 두지 않았던 점 때문이었습니다. 시계가 1분 남은 상황에서 이런 포지션을 플레이하려고 하는 것은 무모함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8...Qh5를 못 봤다면 27.Bg4를 플레이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주의 깊게 계산해보지 않고 Bg4를 두었기 때문에 그 뻔한 수(28...Qh5)를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게임을 두면서 저는 지나친 완벽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훨씬 빨리 받아들이거나 내쳤어야 했던 포지션들을 평가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에 시간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죠. (특별히 18...Bxc3 이후에 발생하게 될 포지션들)

 

 이와 같은 포지션에서 수비 측이라면,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불리한 오프닝 진행이 발생하는 것은 언제나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체스기술의 주요점은 자신의 기회를 최대한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Leon Hoyos 가 이 게임에서 해낸 것이죠. 아마도 그가 내린 결정 중의 한두 개 정도는 다소 위태로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 바로 그 결정들이 저에게 좁은 선택의 길을 걷도록 강요하는 효과를 냈던 것이죠. 결과적으로, 여러분은 이 게임을 처참하게 실패한 공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철벽같은 수비의 걸작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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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 2013.07.22. 17:10
믾이 알고 갑니다.
4b 2014.03.22. 01:55

역시 체스가 오묘해

stalemate 2014.06.26. 03:22

시간이 얼마 안남아 있으면 현명한 판단을 하기 힘들죠

Dean 2014.10.01. 05:4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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